이른바 ‘김영란법’이라고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오늘부터 시행되며, 신고로 인해 공익을 증진한 경우에는 포상금이, 직접적인 수입의 회복.증대나 비용의 절감을 가져온 경우에는 보상금이 신고자에게 지금된다. 그래서 김영란법의 적용대상이 되는 공직자뿐만 아니라 공직자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국민이 조심할 것은 바로 이 ‘법’이 아니라 이 법의 시행만을 손꼽아 기다려온 이른바 ‘란파라치’라고 할 것이다. 김영란법을 위반한 경우는 형벌이나 과태료만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위반자에 대한 징계가 행해져야 하기 때문에 신고의 위력은 생각보다 막강하다.
이에 예상되는 란파라치의 그물을 소개해본다.
첫째, 택배로 온 선물은 반드시 반송하라.
명절 때는 택배로 오는 선물이 많은데, 택배로 온 선물은 가격 여하를 불문하고 반드시 반송할 필요가 있다. 운송과정에서 란파라치가 운송장을 찍은 후 상당 기간이 지나도 반송하지 않은 선물을 신고하는 경우를 예상할 수 있고,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에 란파라치가 택배기사거나 택배회사 직원일 경우 공직자가 이 그물을 피할 가능성은 사실상 0에 가깝다. 사무실이 아니라 자택으로 배달온 경우는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개는 받는 이의 직함을 기재하기 때문에 수령장소를 불문하고 반송해야 한다. 물론 반송 전후에 기관장에게 신고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하고, 이러한 신고절차로 인해 선물을 보낸 사람도 수사대상에 오를 수 있겠지만 공직자 자신이 살아남는 게 우선일 것이다.
둘째, 직무관련자의 기프티콘은 지체 없이 신고하라.
기록이 남는 선물 중 대표적인 것으로 기프티콘이 있다. 기프티콘은 반송하기 만만치 않은데, 이 경우는 기관장에게 신고하면 된다. 직무관련자의 선물은 가격 여하를 불문하고 징계와 과태료처분의 대상이기 때문에 신고를 지체할 경우 징계를 피할 수 없다. 스마트폰 데이터나 이모티콘 선물도 마찬가지다. 물론 제때 신고한 경우에는 기프티콘 등을 보낸 사람이 형사처벌받을 수 있겠지만,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셋째-1, 제자나 부하에게는 물 한 잔도 얻어먹지 마라.
스스로가 직무관련자보다 상위에 있다고 생각하면 직무관련자로부터는 사소한 호의조차도 거절해야 한다. 사람과의 관계는 어떻게 될지 모르므로 아무리 제자라도 함부로 믿으면 낭패를 보게 된다. 사진 찍기 좋아하는 제자나 부하는 애초에 멀리해야 하고, 제자나 부하와의 대화는 애초에 녹음되고 있다고 생각하라.
셋째-2, 스승이나 직장상사, 직장동료에게는 물 한 잔도 사지 마라.
스스로가 직무관련자보다 동급이나 하위에 있다고 생각하면 사소한 호의조차 제공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관계에서는 무조건 더치 페이해야 하며, 현금보다는 기록이 남는 카드로 결제하는 것이 좋다. 혹시 잘 봐달라는 애교라도 부렸으면 부정한 청탁자로서 가중처벌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넷째, 골프장 갈 때 카풀하지 마라.
골프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카풀을 선호한다. 그런데 차량 편의제공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기름값을 사람수로 나눈 것이 아니라 차종과 유사한 택시(고급승용차의 경우 모범택시)의 택시비가 될 것이므로 대부분 원격지에 소재한 골프장으로의 카풀은 무조건 기준을 초과하게 된다. 더욱이 골프장 직원이나 캐디가 란파라치로 변할 수 있으므로 직무관련성 여부를 불문하고 카풀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골프장으로 공직자를 태우고 간 차량의 운전자나 소유주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다섯째, 식사 후 카풀하지 마라.
식사 후 같은 방향인 사람과 같이 택시타고 가거나, 동승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편의제공 자체가 식사비와 합산되기 때문에 그래서는 안 된다. 29,000원짜리 김영란 세트만 먹었다고 안도해서는 곤란하다.
여섯째, 돌잔치, 환갑잔치 가지 말고, 하지 마라.
10만원까지 부조가 허용되는 경조사는 혼례와 장례뿐이다. 돌잔치나 환갑잔치는 의례에 불과하기 때문에 5만원까지밖에 허용되지 않는다. 문제는 참석자가 직무관련자인 경우는 작은 선물조차도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애매한 자리에는 애초에 가지 않을 필요가 있다. 또한, 기준을 초과하여 받은 금품은 일일이 기관장에게 신고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번잡함으로 피하기 위해서는 결혼식과 장례식에서 아예 부조를 받지 않을 필요도 있다.
일곱째, 계속적인 거래가 오갈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사귀어라.
계속적으로 식사를 해야 하거나 금품이 오갈 수밖에 없는 관계라면 차라리 사귀어라. 사법판단의 주체인 대법원이 애인 열외를 선언한 이상, 직무관련자와는 애인 관계로 사귀는 게 김영란법을 회피하는 최선의 방법일 수 있다. 다만 애인임을 인증받기 위해서는 CCTV 앞에서 키스하거나 모텔에 함께 입장할 필요도 있다. 상대가 동성이라면 커밍 아웃도 감수하라.
여덟째, 자기가 먹은 밥값, 찻값은 각자 내라.
김영란법에 엮이기 싫다면 애초에 자기가 먹은 밥값, 찻값을 더치 페이할 필요가 있다. 한턱 쏜다는 친구가 있으면 바로 절교하고, 자기 밥값, 찻값도 낼 형편이 되지 못하는 친구가 있어 엔빵하기가 불편한 모임은 애초에 가지 마라. 회의를 하더라도 회식은 자제할 필요가 있고, 업무 관련 외부기관과의 회식은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피하라.
아홉째, 공직에 나설 것이면 혼자 사는 게 낫다.
이상의 여덜 가지 권고를 혼자 실천해서는 의미가 없고, 배우자가 함께 실천해줘야 한다. 배우자는 ‘내가 누구의 배우자다’라고 떠들면서 김영란법을 티가 나게 위반해도 배우자 자신은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배우자에게 잘할 자신이 없는 공직자는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낫다.
열째, 란파라치를 알게 되더라도 모른 체 해야 한다.
김영란법의 신고자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거나 보도한 경우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신고를 업으로 하는 란파라치를 알게 되더라도 모른 체 할 필요가 있다. 란파라치의 마수를 피하고 싶은 공직자는 사표를 내고 속편하게 이민가면 된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적은 글이지만, 부패 심사는 형평성이 강조되는 사법영역이기 때문에 1년 뒤에는 이런 일이 진짜 현실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무고자나 악의적 신고자에 대한 대책을 충분히 마련하지 않고 입법했기 때문에 김영란법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는 달리 란파라치가 신고에 앞서 위반자와 합의를 시도하거나,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강직한 공직자를 제거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등 전혀 엉뚱한 곳에서 혼탁상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기 때문에 부패연구자로서, 그리고 김영란법의 대상자로서 그저 지켜볼 따름이다.